|
달려라. 세상 끝까지.
by 코스테
카테고리
오늘을 산다 래클린데이즈 -
태그
풉
사진
캐서린헤이글
섹스앤더시티
영화
일기
생각
로맨틱코미디
제라드버틀러
홈페이지
|
|
그것은 과연 불편한 진실일까? 여주인공의 이름은 애비(캐서린 헤이글), 남주인공의 이름은 마이크(제라드 버틀러). 뉴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애비는 수상 경력까지 있는 훌륭한 프로듀서지만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은 도무지 시청률이 나지 않는다.그래서 방송사에서는 특단의 조치로, 케이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크를 섭외하게 된다. 그는 걸한 입담과 남녀 관계의 뒷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며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 애비의 기준으로 그의 표현은 너무나 난잡하고 추잡하다.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아보이는 두 남녀가 만났으니 으르렁거리는 일은 당연지사. 마이크는 얼굴 착하지 몸매까지 착한 애비가 싫지 않지만 애비는 마이크의 노골적인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애비의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직업은 의사요, 개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며 와인을 즐겨 마시는 섬세한 애비의 취향에 딱 부합하는 남자가 아닌가. 애비는 어떻게든 그 남자를 잡고싶다. 그렇게 애비는 연애박사인 마이크의 조언을 듣게 되고 결과는 대 성공. 하지만 애비의 못볼꼴을 다 본 마이크는 묘하게 애비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 나는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소재가 나올만큼 나온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그 뻔한 캐릭터와 흘러가는 스토리를 수족처럼 조절하는 경지에 올랐다. 결말을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 속에서 즐길만큼 즐길 수 있는 클리셰의 향연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글리 트루스는 영상미로 본다면 크게 수위가 높을 것도 없지만 그 걸걸한 입담이 과연 노골적이다. 야한 이야기야 강건너 불구경하듯 재미있게 봐왔던 나로서는 솔직한 이야기 속에 담겨진 남녀관계의 밀고 당기기와, 로맨틱 코메디의 정석을 밟아가는 뻔한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캐릭터는 또 얼마나 명확한지, 겉보기에는 한량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저 섹스뿐일 것 같은 마이크는 사실 조카를 아버지처럼 돌봐주고 싶어하는 자상한 캐릭터라는 설정에, 미인에 능력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애비는 그야말로 전세계 여성의 마음을 대변한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하라,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다듬어라, 그것이 작가의 기본이라는 간단하고도 어려운 수식을 완벽하게 풀어낸 영화. 웃을만큼 웃었고 너무 이야기를 꼬지 않는 단순함과, 무엇보다도 제라드 버틀러의 색다른 매력에 푹 빠져 2시간을 즐겁게 보내다 왔다. '퍼블릭 에너미'에서 실망하고 '프로포즈'에서 하품만 하다 온 9월 영화관람의 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아멜리에에서 스텝업으로 흘러가는 지조 없는 영화 취향 속에서 자주 보는 영화가 될 것 같다. 하하하. |
예전에는 어리고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속이 상했다. 내가 가질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질투심으로 들끓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이십대가 된 후로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천재적인 작가들을 보고 존경심보다는 질투심을 갖게 되는 것은, 실제로도 어느정도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 사람들은 노력하면 분명히 자신이 질투하던 대상만큼은 아니더라도 세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다. 태어날 때 부터 조금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진짜 재능은 빠른 속도로 습득하는 능력이나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감각이 아니다. 애초에 빠른 속도로 습득하기 위한 연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능력이 될 수 없고, 만들어낸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데 감각을 평가받을 수 있을까. 부지런히 만들어 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진짜 재능은 노력이다. 하다못해 작품을 만들어 낼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그것을 스무살을 넘기면서 고통스럽게 깨닫고말았다. 내가 했던 것은 잔꾀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어머니가, 우리 자식은 조금만 공부하면 잘 할거예요. 라고 믿고 있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이 공부해서 잘 할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아들은 공부를 안한다. 그래서 못하는 것이다.
내 어린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더 이상 나는 다른 사람의 업적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업적이 부러울 이유가 없다. 그것은 내가 도달해야 할 장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잃을 것은 없다. 그 반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의식은 나를 살아남게 했으며 나를 변하게 했다.
한 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까. 결론은 이랬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 내가 나를 가치있게 만드는 방법. 계속 달려야겠다.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싶다. 정현종 시인이 그랬던가. 섬에 가고싶다고. 그 섬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섬에 간다. 지난 주에는 진도에 갔다왔는데, 이번에는 우이도다. 진도보다 조금 더 들어간다. 목포에서 배를 타야한다. 세 시간 간다. 쾌속으로 세 시간이다. 초 쾌속선이라는데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다. 나도 섬에 가고싶다. 간다.
우이도는 영화 가을로의 모델이 된 섬으로, 사구. 모래언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막이라 세계적 유산으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주민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 섬은 사실 일제시대 때에 질 좋은 해송을 싸그리 뽑아간 일본 사람들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면서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사막이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를 모두 뽑아서 민둥산이 생긴 것 처럼 모래 사막이 생긴 것이다. 때문에 그 대로 사막을 보존하면 우이도 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이제서야 회복되어가는 섬의 산림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르내리면 모래가 무너져 산이 없어지기 때문에 통행 또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우이도는 꼭 사막이 아니더라도 볼 것이 많은 섬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그 어떤 섬에도 뒤쳐지지 않는다. 섬만 돌아다니면서 시를 쓰는 모 시인이 우이도를 최고의 섬으로 극찬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모 시인이 누군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렇다.
이것저것 다 필요없이, 나는 섬에 가고싶다. 처음에는 쉬러 간다고 생각했고, 운이 좋으면 배나 타보겠구나 싶었는데 진도 의신면 칠전리에서 할머니들 손을 붙잡고 눈물 찔끔 흘리고 나니 이제는 우이도에 사는 사람이 궁금하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 섬일까. 그 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지낼까. 어떤 힘든 일이 있으신걸까. 백명이나 살까 의심되는 그 섬에는 교회가 세 개나 있다. 우이도에 가면 꼭 그 교회를 찾아다닐거다. 내가 여유가 더 있다면 기타와 노트북을 챙겨 넣었을텐데, 그 정도 주변머리가 못된다. 친구는, 내가 기타를 가져가면 비웃어주겠다고 한다. 기타가 뭐 어때서. 멋있잖아. 기타는 낭만의 상징이라고. 기타가 부끄럽다고 했던 친구는 바닷가에서 긴 치마를 입는게 낭만적이라고 표현했다. 내 생각엔, 그거나 그거나다. 그래서 난 떠난다. 4박 5일, 나는 바다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조금 더 투자하기로 했다. 목포까지 우등고속버스를 타고가기로 결심했다. 난 소중하니까. 스물 네살이니까 이제 우등을 타도 될 것 같다. 기대된다.
|
도시의 소음 속에는 많은 것이 있다. 흐릿한 바람 소리에는 오토바이 배기음과 자동차 시동소리가 섞여있고 어딘가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도로는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자동차 경적소리까지 거침없이 들려오는 것이다. 12층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면 도시의 소리가 들려온다. 높은 곳에서 살면 조금 조용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어쩌면 단층주택에서 살 때 더 조용했던게 아닌가 싶다. 별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요람처럼 조용히 살았다. 예전엔 도시가 무엇일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 소음이 도시의 생명력이 아닌가 싶다.
도시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곳이다. 공기도 혼탁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숲과 호수를 그리워한다. 아주 작은 하천에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 뿐이다. 아마 사람은 자연에서 에너지를 받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도시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버린다. 그래서 언제나 도시는 생명력이 넘치고, 사람들은 힘이 없다. 쉽게 지치고 우울해진다. 항상 슬픔에 잠겨있다. 눈가가 촉촉히 젖어있지만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슬픔이다. 나도 도시 사람인 것이 틀림 없다. 그래서 이렇게 슬픈 것이다.
나 또한 도시의 소음이다. 또각이는 하이힐 소리. 재잘거리는 말 소리. 코드를 짚는 피아노 소리. 가끔은 소음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말 한 번 건넨적 없는 도시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의 존재를 느낀다.
|
아이스크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 냉해서 그런지, 워낙 차가운 음식은 몸에 맞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냉수 한 잔에도 벌벌 떨면서 여름에도 냉국, 냉면, '냉'자가 들어가는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다. 단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설탕이나 꿀이랑은 인연이 없다. 가끔 아주아주 쓴 - 몸에 좋을 것 같은-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꿀은 먹지 않는다. 달콤한 것보단 차라리 쓴 것이 낫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먹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상하게 가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외로워서 그런걸까, 별 것 아닌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날이 있는 것 처럼 나와 아이스크림은 묘한 애증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한 번씩은 먹어줘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어릴 때에는 베스킨라빈스에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 하겐다즈에 입문하면서 나의 아이스크림 세계는 활짝 열렸다. 평소에는 잘 갈 수 없는 이름있는 카페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들깨, 홍차 아이스크림에서 웰빙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간 요거트 아이스크림까지 이것 저것 맛보면서 나는 취향을 직감하게 되었다.
처음은 무조건 바닐라였다. 스무살이 되기 전 까지, 그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얀 색이라면 사죽을 못썼다.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이던 무조건 하얀색이어야했고 캔디바, 샤베트를 거쳐서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세계에 푹 빠져있었다. 빵빠레 아래에 숨어있는 하얀 샤베트, 그 신맛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독한 샤베트의 신맛에 하얀색이라면 샤베트를 제외한 모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정도로 샤베트라면 질색을 했다. 진짜 샤베트가 무엇인지 알아버린 지금에서야 샤베트를 무조건 싫어할 수야 없지만 페트병에 파는 오렌지 쥬스도 먹지 못할정도로 입맛이 담백했던 나에게 샤베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십대의 나는 샤베트와 이별을 고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이라면 무조건 바닐라. 서주아이스크림에 투게더까지 바닐라라면 사죽을 못썼다. 서주 아이스크림과 투게더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에는 서주아이스크림의 업그레이드 격인 '아이스를 머금은 순수 밀크'라는 제품이 나와있더라.) 소위 말하는 '바닐라'맛이라는 점과 무지하게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그렇게 신나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무식하게 달콤한 아이스크림, 지금은 입도 대지 못한다.
조금 나이를 먹고서 나는 녹차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실제 녹차를 마시기도 했지만 나는 녹차 관련 상품에 광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녹차 케이크, 녹차 아이스크림, 녹차 과자. 그 때는 몰랐지만 녹차 관련 제품은 하나같이 당도가 높았다. 상상했던 녹차의 엄격한 맛이 나지 않으니 걸신들린 것 처럼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면 베스킨라빈스 하겐다즈에서부터 시작해서 편의점에서 파는녹차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순회했지만 결과는 대 실패였다. 때마침 녹차가 광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였지만 내 입맛에는 녹차의 쓴 맛과 달콤한 설탕맛이 어우러진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들이 죄다 김치에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넣은 것 처럼 거슬리기만 했다. 그 때에는 녹차의 쓴 맛이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녹차 초콜렛을 마지막으로 나는 녹차와 이별을 고했다. 지금도 녹차는 마시지만 더이상 녹차 케이크, 녹차 아이스크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맛있다면 어떤 맛이든 가리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홍차 아이스크림이다. 그린티를 거쳐 블랙티에 강하게 매료된 나에게 준비된 것 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녹차 붐이 일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지금은 녹차 관련상품이 싸그리 사라지고 있고, 녹차 붐이 일었던 것이 무색하게 홍차 시장은 매니아층을 형성할 뿐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부족한 홍차 정보에 목마름을 느낀다. 홍차 전문점에서 홍차를 구입하고, 밀크티를 만들고, 카페에서 언제나 밀크티를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홍차 아이스크림을 가장 좋아했지만 좀처럼 먹을 기회가 없다. 꾸준히 늘어나는 홍차 시장은 이상한 쪽으로 비상하게 발전되고 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의 차이라떼, 블랙 티라떼.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블랙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애매한 맛과 역시나 늘어가는 설탕범벅의 회오리. '달지 않게 만들어주시겠어요?'라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원래 준비되어있는 블랙티라떼 시럽에 물을 섞는거라 아예 달콤하지 않게는 힘들다는 말이다. 그건 '블랙 티'라떼가 아니지 않나. 다 거짓말. 혼자 화가 나서 커피 체인을 나오는 것이다. 여전히 나의 홍차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홍차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할 때에는 딸기 치즈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낙이다. 유제품을 곰살나게 좋아하는 것이다. 유제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유제품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내 지갑은 100% 열린다. 가련할정도다. 그렇게 계절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나의 전통은 근근히 이어지고 있다. 취향을 넘어 취향을 타며, 지나온 세월을생각하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나는 어른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단지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아이스크림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없으며, 초록색이라는 이유만으로 녹차의 떫은 맛이 날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생과일 주스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지금은 딸기 바나나에 광적으로 빠져있다. 왜 그렇게 인정하기 힘들었을까. 어릴 때에는 스스로의 입맛조차 인정하기 힘든 굴레였다. 어릴 때에는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뭐가 그렇게 답답했던건지. 이제는 조금 벗어난걸까. 무엇이든 맛보고, 무엇이든 해 보고, 그리고 안된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남들은 어릴 때 경험한다던데 나는 이제서야 그걸 깨닫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보고 옛날 생각을 해본다.
오늘의 아이스크림은 끌레도르. 달콤한 딸기의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치즈의 질감이 일품인 '레드카펫 치즈케이크'와 하얀 요거트 그 달콤한 맛에 가미된 블루베리의 풍미가 물씬 느껴지는 '원스 인 어 블루베리'. 스물 네 살 여름의 아이스크림이다.
|
친구와 홍대 거리를 걸었다. 골목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단지 걸어다닌 것 뿐인데, 행복해졌다.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
Sex And The City 'movie' "You don't love me anymore?" "Yes.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자신의 약한 모습을 알아주고 힘껏 사랑해주던 젊은 배우와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사만다는 어느새 사랑때문에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그 때문에 욕구불만을 쇼핑과 폭식으로 풀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만다는 스스로를 위해서 아름다운 이별을 결심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 욕구 추구형. 돈 잘 벌고 잘 쓰는 여자. 사랑을 믿지 않지만 누구보다 힘껏 사랑할 줄 아는 여자.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진짜 여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 뿐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사랑할 것. |
난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가끔 환상을 쫓을 때가 있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내 머리로 해석하거나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일로 혼자 눈물 짓는 일이다. 가끔은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만 같아서 두려워 할 때도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존재하는 것을, 나는 그 짧은 순간도 견딜 수가 없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참 잘 해준다. 어떤 사람은 내 전화도 받지 않는다. 어쩌면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사실 나를 싫어하고, 내 연락을 피하는 사람이 정말로는 나를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이니까 나는 어찌되었건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정보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서야만 하는 위치에서는 언제나 구설수에 시달리게 된다. 나는 불안해하며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웃는다. 그 사람들이 뒤에서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울었다. 단지 내가 나약해서 힘들어하는게 아니라고 다독이며 혼자만의 세상으로 숨어들었다.
|
오늘은 피아노를 조율하는 날이다. 집 피아노 상태가 영 아니라서 조율사를 불렀는데 피치가 440으로 맞춰져 있길래 443으로 맞춰달라고 부탁하고 앉아서 기다리려니 별로 할일이 없어 심심-했다. 저번에 조율해주셨던 분은 영 실력이 없는 분인지, 음감이 좀 떨어지면 조율 기계를 쓰면 될 것을, 어째 조율 하고서도 소리가 나아지질 않았다. 특히 윗쪽으로 갈 수록 음이 떨어지는 소리가 여실히 들려서 집에 돌아와서 엄청 짜증났었던 일이 작년 말의 이야기다. 미루고 미루다 이번 기회에 다시 조율사를 부르게 되었는데, 이번 조율사님은 제대로 된 분인 것 같다. 피아노도 잘 치시고 소리도 좋은걸 보면 열심히 해주시는 것 같다. 역시 조율사 뒤에 뒷짐지고 앉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는 농담이고, 이번 조율사님은 정말 잘하시는 것 같다. 명함도 받았다. (돈도 3만원이나 싸다. 고유가시대에 바람직한 조율사님이 아닌가. 야호.)
피아노 조율을 듣고 있는 것은 정말 불쾌지수가 팍팍 올라가는 일이다. 피아노의 줄은 윗쪽 음으로 가면 3개의 줄을 쓰게 되는데 그 3개의 음이 모두 맞아야 한다. 그 때 줄마다 주파수가 달라서 맥놀이가 발생하는데 피아노 줄은 소리가 무척 강해서 (줄을 망치로 때리니까 ㅜㅜ) 피아노를 칠 때 소리가 맞질 않으면 그 미묘한 소리의 차이에 -나같은 경우는 - 토할 것 같다. 웩. 내가 보기엔 조율사라는 직업은 3D같다. 힘들어...
이렇게 조율하는 (정장을 입은) 남자의 뒷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러고보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처음 내가 절대음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 전까지는 절대 음감의 존재 자체를 몰랐었다. 소리를 듣고 음을 아는 것이 재능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고, 그 전까지는 내 음감을 사용할 일은 만화 주제가를 부르는 일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절대음감을 갖게 된 것일까? 한번 떠올려보니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TV에서는 MBC에서 꽃의 천사 메리벨이 방영 할 때였다. 음감이 형성되는 시기로 미루어 보아 내가 음감을 익힌 것은 조금 더 어렸을 때의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때 절대음감이 발현했다고 확신한다. 나는 꽃의 천사 메리벨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꽃의 천사 메리벨은 언덕 위에 살았는데 나는 그 때 꽃의 천사 메리벨의 집을 보면서, '나도 커서 독립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꽃의 천사 메리벨의 집은 이동도 간편할 뿐만 아니라 안에 들어가면 밖에서 보이는 것 보다 넓어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술인데... 해리포터에서 봤나보다. 분명히 메리벨이 해리포터보다 먼저 나왔으니 표절은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 메리벨의 오프닝 주제가를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니 D코드지만, 예전에 그 노래를 C코드로 외우고 다녔다. 그래서 '도'를 소리내야 할 일이 있을 때 마다 꽃의 천사 메리벨을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나는야 꽃의 천사 메리벨. 아, 이 음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작곡을 하는 것도 모두 다 꽃의 천사 메리벨을 열심히 부른 덕분인 것 같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 생각하니 그렇게 세련된 세일러문의 주제가 보다도 소박한 메리벨의 주제가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니, 역시 동심은 살아있어. 뜬금없게 갑자기 로미오의 푸른하늘이 보고싶구나.
덧. 절대음감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음악을 오래 배워온 사람들이 왜 음악을 더 잘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다. 말하자면 어렸을 적 부터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음악을 더 잘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 해서가 아니다. 음악을 들을 때 '언어'를 담당하는 뇌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니 음악을 어렸을 때 부터 익힌 사람들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음악을 받아들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늦게 배운 사람들은 타국어를 익히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음악을 익히기에 더 늦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어렸을 때 음감이 잡힌 사람들이 음악을 듣자마자 척척 계이름을 말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조기교육이 중요하긴 한가보다.
*이 글은 특정 인물과 관계 있습니다. *꽃의 천사 메리벨의 주제가를 부른다고 절대음감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
이제 연주자들이 악기의 색깔마저도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오고있나보다. 이어지는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