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예로 들자면, 나는 연애 잘 못한다. 이른바 잘 꼬이지 않는 여자다. 나는 엔간한 일은 스스로 처리하고, 남에게 도움 받는 일이 거의 없다. 보통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의 80%는 문의전화다. 문의 전화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데, 보통 컴퓨터에서 잘 모르는 점이 있거나 길을 잃어버렸을 때 전화가 온다. 그렇다면 나는 컴퓨터를 잘 알거나 길을 잘 아는 사람인가? 나는 공대생이 아니다. 평범한 음대생일 뿐이다. 길 또한 잘 알리가 없다. 나는 운전면허조차 없다.
어떤 글을 봤다. 남자들은 예쁘고 어리버리한 여자를 좋아하고, 본인도 그런 여자가 귀여워 보인다는 내용의 포스팅이었다. 그 포스팅을 보고 있자니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옛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동동 떠다녔다. 친한 친구가 있다. 어딘가 바람 빠진 것 처럼 어리버리하다. 얼굴 적당히 예쁘고, 말도 천사처럼 곱게 한다. 어딘가 특이한 면이 있지만 그 친구의 주변에는 항상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올 때는 둘 중 하나다. 첫째, 남자친구에게 섭섭한 일이 있어서. 둘째, 뭔가 모르는 일이 있어서. 그 친구를 보면서 과연 남자들은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인기 있는 여자'에 관련해서는 여자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이 모든 학설에는 그저, 여성의 외모가 '예쁘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다. (실제로 잘 사귀고 있는 커플의 여성쪽이 모두 아름답지는 않다. 학설은 그저 남성이 선호하는 타입이라고 생각되는 여성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할 뿐이다.)
1. 어리버리한 여자.
어딘가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내가 항상 있어줘야 할 것 같다. 이 여자가 바로 내가 지켜줄 여자!
2. 도도하고 섹시한 여자. 여자라면 역시 튕기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이런 여자와 사귄다면 분명히 자랑스러울거야!
3. 지적인 매력을 지닌 여자. 어딘가 어른스럽고, 자기할 일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로 동등한 연인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귀는 듯 하다.
이 학설은 널리 알려진 학설은 아니다. 그냥 저런 여자가 인기 많지 않나? 하는 민간의 토속적인 발언들이 모여 만들어진 소의견일 뿐이다. 실제로 내 주위의 남자들에게 이상형을 물어봤더니 역시 어리버리한 여자가 많았지만 특이한 답변도 있었다. 헤어밴드를 한 여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둥 여러가지 말이 있었지만 보통은 일단 예쁘면 좋다고 한 것 같다. 대체 왜 남자들은 어리버리한 여자를 좋아하는걸까? 사실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리버리한 여자는 딱 한달 만나고 나면 지치지 않나? 사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쉬운 문제로 고민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어리버리한 정도'는 어느 정도가 딱 좋은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내 앞에 있는 여자애가 딸기잼 뚜껑을 열지 못하고 있네? 아 귀엽다.
- 이건 힘이 약한거지 어리버리한게 아니잖아. 하지만 일반론으로 보자면 이것은 어리버리함에 속한다.
내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길을 잃었다고 한다. -애초에 서울시내에서 왜 길을 잃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목적지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을 수는 있다. 이런 경우를 속된 말로, '길치'라고 한다. 나는 이런 경우에 가까운 부동산으로 들어간다. 만약 여자친구가 길치라면 사귀는 내내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올 것이다. 남자는 네이버 지도에서 여자친구의 위치를 검색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내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것은 어리버리한 것인가? 보통 어리버리함은 소박한 실수를 연발하는 것을 보고 어리버리하다고 하던데. 잘 모르겠지만, 이것도 일반적으로 어리버리함에 속하는 것 같다. 남자들은 여자가 어리버리한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본인조차도 그 일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자 동기에게 매일 전화가 온다. '내 여자친구가 피날레에서 모르는게 있대. 누나 그것 좀 알려주면 안될까?' 그러는 주제에 여자친구에게 아무 말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한다. 나는 매일 밤 고민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걸까?
내 여자친구가 컵을 깼다!
-이것은 어리버리한가? 잘 모르겠지만, 이런걸 좋아하는 거라면 문제가 있다. 여자친구는 단지 오늘만 컵을 깬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분명 과거에 컵을 깬 전력이 있으며, 미래에도 컵을 깰 것이다.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컵을 깬 이유는, 손이 작아서도 아니고 손이 미끄러워서도 아니다. 그 사람이 주의력이 부족한, 어리버리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방금 전에도 전화왔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사용법에 대한 질문이다. 어째서 사람은 똑같은 질문을 두 세번씩 하는걸까? 어째서 이 아이들은... 벌써 세명 짼데, 똑같은 질문을 여러사람이 하면서 서로가 똑같은걸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걸까. 왜 이 아이들은 나에게, 넌 어쩜 그렇게 컴퓨터를 잘 아니? 라고 묻는걸까. 고백하는데 난 정말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어리버리함이 뭔지 감이 잡힌 것이다. 어리버리함이란?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들키느냐, 들키지 않느냐의 차이다.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 남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욕구를 말하는거다. 남자들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어리버리하지 않은 여자이며, 남자들이 연애하고 싶은 여자는 어리버리한 여자라고 한다. 나의 결론에 의하면 남자들이 연애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자신의 실수를 숨기려는 생각이 없으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남자들은 이런 여자의 어디가 좋은걸까? 단순히 사람의 유형, 의 차이지만 언제나 이런 문제는 내 머리를 아프게 할 뿐이다. 정말이다. 그런데
나의 생각에 약간의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난 남자들이 어리버리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길래, 일반적으로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 여성을 어리버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럴수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어리버리함은 어리석은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어리석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젠데, 남자가 좋아하는 어리버리한 여자는 '어리버리한 와중에도 지혜로움은 잃지 않는' 여자라는 말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듣는 여자들은 10명에 9명은 코웃음을 치며,
그건 꿈 속에서나 나오는거야. 얼굴이 예쁘고 머리가 빈 가슴 큰 여자가 있나? 얼굴이 예쁘면 그 여자는 분명 얼굴값을 한다는거지. 어리버리한데 지혜로운 여자가 있겠어? 지혜로운 여자는 사려깊고, 어리석은 실수는 하지 않는거지. 라고 말 할 것이다. 실제로 나라도 그렇게 말 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어리버리한 와중에서도 지혜로움은 잃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보니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생각했던, 뭐야 그건! 어리버리한 여자가 왜 좋아? 라고 생각해왔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낀다. 여자가 그저,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에게만 끌리는 것이 아니고, 남자가 얼굴 예쁘고 가슴 큰 여자에게만 끌리는 것이 아니 듯이, 남자던 여자던, 우리에게는 언제나 '디테일한 이상형'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내 이상형은, 지혜롭고 합리적인 남성이다. 좀 더 디테일하게 나가자면? 어리버리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남성이다. 나는 같은 여자라도 똑같은 실수를 연발하는 여성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이 어리버리한 여성을 좋아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이 사실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인 듯 하다. 여성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은 남성의 로망인 것 같고, 자신이 지켜줄 수 있는 여자를 찾는 것이 남자의 본능인가보다. 여성 또한 그렇다. 자신을 힘껏 지켜줄 수 있는 남성을 찾아헤멘다. 백마탄 왕자님이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조금 힘빠지는 사실이지만, 확실히 어리버리한 여자는 귀엽다. 이상하다. 정말로 그들은 귀엽다. -좋아하고 안좋아하고를 떠나서, 진실로 진실로 귀엽다. 그래서 나는 어리버리한 여자에게 절대로 관대해 질 수 없나보다.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졌기에 더욱 더 애틋하고, 더욱 더 밉다. 에잇!
남성이나 여성이나, 결국 결혼은 어리버리하지 않는 여성과 하는게 지혜롭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점에 위안을 던져본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긴 하다.) 아니면? 지혜롭게 적당히 어리버리해 보일 줄 아는 테크닉을 갖춘 여성이 되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