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네 살의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 냉해서 그런지, 워낙 차가운 음식은 몸에 맞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냉수 한 잔에도 벌벌 떨면서 여름에도 냉국, 냉면, '냉'자가 들어가는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다. 단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설탕이나 꿀이랑은 인연이 없다. 가끔 아주아주 쓴 - 몸에 좋을 것 같은-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꿀은 먹지 않는다. 달콤한 것보단 차라리 쓴 것이 낫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먹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상하게 가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외로워서 그런걸까, 별 것 아닌 행동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날이 있는 것 처럼 나와 아이스크림은 묘한 애증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한 번씩은 먹어줘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어릴 때에는 베스킨라빈스에서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 하겐다즈에 입문하면서 나의 아이스크림 세계는 활짝 열렸다. 평소에는 잘 갈 수 없는 이름있는 카페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들깨, 홍차 아이스크림에서 웰빙 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간 요거트 아이스크림까지 이것 저것 맛보면서 나는 취향을 직감하게 되었다.

처음은 무조건 바닐라였다. 스무살이 되기 전 까지, 그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하얀 색이라면 사죽을 못썼다.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이던 무조건 하얀색이어야했고 캔디바, 샤베트를 거쳐서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세계에 푹 빠져있었다. 빵빠레 아래에 숨어있는 하얀 샤베트, 그 신맛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독한 샤베트의 신맛에 하얀색이라면 샤베트를 제외한 모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할정도로 샤베트라면 질색을 했다. 진짜 샤베트가 무엇인지 알아버린 지금에서야 샤베트를 무조건 싫어할 수야 없지만 페트병에 파는 오렌지 쥬스도 먹지 못할정도로 입맛이 담백했던 나에게 샤베트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십대의 나는 샤베트와 이별을 고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이라면 무조건 바닐라. 서주아이스크림에 투게더까지 바닐라라면 사죽을 못썼다. 서주 아이스크림과 투게더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에는 서주아이스크림의 업그레이드 격인 '아이스를 머금은 순수 밀크'라는 제품이 나와있더라.) 소위 말하는 '바닐라'맛이라는 점과 무지하게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그렇게 신나게 먹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무식하게 달콤한 아이스크림, 지금은 입도 대지 못한다.

조금 나이를 먹고서 나는 녹차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실제 녹차를 마시기도 했지만 나는 녹차 관련 상품에 광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녹차 케이크, 녹차 아이스크림, 녹차 과자. 그 때는 몰랐지만 녹차 관련 제품은 하나같이 당도가 높았다. 상상했던 녹차의 엄격한 맛이 나지 않으니 걸신들린 것 처럼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면 베스킨라빈스 하겐다즈에서부터 시작해서 편의점에서 파는녹차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순회했지만 결과는 대 실패였다. 때마침 녹차가 광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였지만 내 입맛에는 녹차의 쓴 맛과 달콤한 설탕맛이 어우러진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들이 죄다 김치에 설탕을 지나치게 많이 넣은 것 처럼 거슬리기만 했다. 그 때에는 녹차의 쓴 맛이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녹차 초콜렛을 마지막으로 나는 녹차와 이별을 고했다. 지금도 녹차는 마시지만 더이상 녹차 케이크, 녹차 아이스크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맛있다면 어떤 맛이든 가리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홍차 아이스크림이다. 그린티를 거쳐 블랙티에 강하게 매료된 나에게 준비된 것 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녹차 붐이 일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지금은 녹차 관련상품이 싸그리 사라지고 있고, 녹차 붐이 일었던 것이 무색하게 홍차 시장은 매니아층을 형성할 뿐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부족한 홍차 정보에 목마름을 느낀다. 홍차 전문점에서 홍차를 구입하고, 밀크티를 만들고, 카페에서 언제나 밀크티를 마셔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홍차 아이스크림을 가장 좋아했지만 좀처럼 먹을 기회가 없다. 꾸준히 늘어나는 홍차 시장은 이상한 쪽으로 비상하게 발전되고 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의 차이라떼, 블랙 티라떼.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블랙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애매한 맛과 역시나 늘어가는 설탕범벅의 회오리. '달지 않게 만들어주시겠어요?'라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원래 준비되어있는 블랙티라떼 시럽에 물을 섞는거라 아예 달콤하지 않게는 힘들다는 말이다. 그건 '블랙 티'라떼가 아니지 않나. 다 거짓말. 혼자 화가 나서 커피 체인을 나오는 것이다. 여전히 나의 홍차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홍차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할 때에는 딸기 치즈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낙이다. 유제품을 곰살나게 좋아하는 것이다. 유제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유제품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내 지갑은 100% 열린다. 가련할정도다. 그렇게 계절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나의 전통은 근근히 이어지고 있다. 취향을 넘어 취향을 타며, 지나온 세월을생각하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어쩌면 나는 어른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단지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아이스크림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하는 일도 없으며, 초록색이라는 이유만으로 녹차의 떫은 맛이 날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생과일 주스는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지금은 딸기 바나나에 광적으로 빠져있다. 왜 그렇게 인정하기 힘들었을까. 어릴 때에는 스스로의 입맛조차 인정하기 힘든 굴레였다. 어릴 때에는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뭐가 그렇게 답답했던건지. 이제는 조금 벗어난걸까. 무엇이든 맛보고, 무엇이든 해 보고, 그리고 안된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남들은 어릴 때 경험한다던데 나는 이제서야 그걸 깨닫는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보고 옛날 생각을 해본다.

오늘의 아이스크림은 끌레도르. 달콤한 딸기의 맛과 부드럽게 씹히는 치즈의 질감이 일품인 '레드카펫 치즈케이크'와 하얀 요거트 그 달콤한 맛에 가미된 블루베리의 풍미가 물씬 느껴지는 '원스 인 어 블루베리'. 스물 네 살 여름의 아이스크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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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oney-B 2009/07/10 09:17 # 답글

    저도 공감해요,ㅎㅎ 어릴땐 죽도록 싫었던 음식들이 커서 두려움을 안고 다시 시도해봤는데 정말 너무 맛있게 느껴질때, 내가 어른이 되가는구나 하고 느끼죠,,ㅎㅎ 지금은 너무나도 좋아하는 청국장이나 싱싱한 채소류 등등,,본인의 입맛이 변해감을 느낄때가 어쩌면 정말 어른이 되가는 확실한 증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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